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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빙글리 신학사상의 변화
취리히 그로스뮌스터 교회의 주임목회자로 청빙 받은 츠빙글리는 본격적인 개혁에 나설 즈음 당시로는 불치병으로 알려진 흑사병에 걸렸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츠빙글리는 생의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는데 발병 후 모든 것을 체념하고 음악을 짓는데 몰두하던 그는 기적적인 치유를 경험하게 되었고 이로 말미암아 그 때까지 지니고 있던 에라스무스적, 인문적 개혁 의지를 버리고 성경에 몰입하여 하나님 말씀에 사로잡힌 개혁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요한복음 연구와 아우구스티누스 연구를 통해 복음의 능력과 내용을 깨우친 후 오직 예수의 화해사역에 근거한 하나님의 은총으로 믿음 안에서 구원에 이르는 복음의 진리를 확신하며 본격적인 종교개혁에 나섰습니다.
1551년 츠빙글리는 뮌스터교회를 이끌어 가는 24명의 수사회원 중 한 사람이 되어 목회자와 감독관을 겸직하게 되었고 자신의 교회개혁 의지와 구상이 지지받기 시작했습니다. 이듬해인 1522년에는 ´권위 문제‘에 부딪혀 기존 교회의 제도와 공의회, 교리, 교황의 권위를 인정하는 인문주의자들과 갈라서게 됩니다. 이들의 노선과 달리 츠빙글리는 기존 교회의 권위를 모두 부정하고 오직 성경 즉 하나님 말씀만을 새로운 권위로 인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교회와 사회 개혁에 나선 것입니다. 이 때 츠빙글리는 성경주석을 통해 설교로 이어지는 과정을 가르치는 선지학교 즉 목회자 양성학교인 프로페찰을 신설하였고 철저히 성경을 바탕으로 하는 사회개혁에도 나섰습니다.
당시 취리히 상황
그로스뮌스터 교회에 행해진 츠빙글리의 강해설교에 영향을 받은 청중들은 기성 가톨릭교회에 대한 공개적 비판을 시작했습니다. 즉 마리아 상과 그에 대한 숭배, 성자숭배, 수도원 부패, 성직자의 독신제도 등을 공개 비판하였고 그 가운데 당시 가톨릭교회 영향으로 사회제도로 정착된 사순절 금식과 고기 취식 금지 등 경건운동의 율법화를 강하게 비판하며 그 규례를 깨뜨리려 했습니다. 즉 1522년 3월 열 두 명이 출판업자의 집에 모여 의도적으로 소시지를 먹었고 그 소문이 사방에 퍼져 여러 곳에서 소시지 사건이 반복되었습니다. 그러나 츠빙글리는 사순절 기간 중 고기취식을 죄로 여겨 이를 처벌할 성경적 근거는 없으나 기존의 전통을 존중해야 하며 다만 공공질서를 파괴하거나 여러 사람을 시험 들게 하는 행위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즉 사순절 기간 중 고기를 먹는 것은 자유이나 공공의 질서 안에서 누리는 자유가 되어야 한다고 선포했습니다.
이제 금식규례는 교회를 떠나 사회적 쟁점이 되어 시의회 사안으로 넘어가게 되었고 시의회는 그로스뮌스터교회 상임위원회에 이 문제에 대한 진단을 의뢰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츠빙글리는 전통은 존중되어야 하며 갑작스럽게 폐지되어서는 안 된다고 견해를 밝혔고 취리히의 성직자 대다수가 이에 찬성했습니다. 그러자 가톨릭교회의 콘스탄츠주교가 특사를 파견하여 협의한 결과 한시적이라는 단서를 달아 금식규례를 지키겠다고 결의했습니다.
츠빙글리의 개혁의지
이러한 일련의 사건은 중세교회의 권위가 새로운 권위인 성경 즉 하나님이 말씀과 충돌하는 사건이었으며 츠빙글리는 그의 설교를 통해서 중세교회의 전통인 교부보다는 하나님이 말
교회 역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눈
‘맛있는 교회사 이야기’ 마지막 순서는 교회사를 바라보는 시각에 관한 것입니다. 지금은 세계화 시대입니다. 여기에는 기독교의 세계화도 포함됩니다. 이 때 한국교회가 세계교회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한국교회는 자체 한국교회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해 답해야만 합니다. ‘동양’이라는 단어는 서양인들이 만들어 규정하고 설명한 것 즉 우리 밖의 사람이 규정한 것이며 우리는 그 틀 안에서 우리 스스로를 인식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거기 머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우리의 정체성을...
Published 09/13/15
츠빙글리의 신학사상
츠빙글리는 한 마디로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종교개혁과 사회변혁을 이루려고 힘썼던 개혁가였습니다. 스위스연방체가 양분되며 카펠전쟁을 치르다가 전사하였지만 그의 신학사상은 오늘날 교회 안에서는 장로교로 대표되는 개혁교회를 이루었고 사회적으로는 아르투어 리히를 통해 경제윤리로 구현되었습니다.
츠빙글리의 경제 윤리
아투어 리히는 취리히 대학에 봉직한 기독교경제윤리학자로 1930년대 ‘땅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회변혁이 필수’라고 주장한 레온하르트 라가르목사의 강연회에 참석한 것이...
Published 09/0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