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06] 스위스의 종교개혁자 츠빙글리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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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빙글리의 신학사상 츠빙글리는 한 마디로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종교개혁과 사회변혁을 이루려고 힘썼던 개혁가였습니다. 스위스연방체가 양분되며 카펠전쟁을 치르다가 전사하였지만 그의 신학사상은 오늘날 교회 안에서는 장로교로 대표되는 개혁교회를 이루었고 사회적으로는 아르투어 리히를 통해 경제윤리로 구현되었습니다. 츠빙글리의 경제 윤리 아투어 리히는 취리히 대학에 봉직한 기독교경제윤리학자로 1930년대 ‘땅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회변혁이 필수’라고 주장한 레온하르트 라가르목사의 강연회에 참석한 것이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후 그는 대학에 진학하였고 츠빙글리의 종교개혁 유산을 발견하였으며 취리히대학에 머물며 경제윤리학자로 그리고 학문의 실천가로 살아갔습니다. 그는 츠빙글리의 ‘하나님의 공의와 인간의 정의’에 주목했는데 츠빙글리는 두 개의 법 또는 두 개의 의를 이야기 하면서 인간 정의의 기초와 목표는 하나님의 공의에 있으며 특히 산상수훈에서 그 실체를 찾아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공의는 제대로 실천되지 못하는데 그 까닭은 인간은 죄인이기 때문이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죄의 용서가 필수적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하여 살아야만 한다고 했습니다. 그가 이야기한 하나님의 공의는 사랑의 계명이고 속사람과 관련되어 있으며 인간의 정의는 겉에 드러나는 행위에 초점이 맞추어진 것이었습니다. 이 둘은 구분은 되지만 결코 나눌 수는 없는 것이고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져야만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 성경은 책속에만 머물 뿐 삶의 책으로 자리 잡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즉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세상에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에 다름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는 인간의 정의를 지킬 뿐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를 부단히 추구해야만 하는데 인간의 정의를 세우는 책임은 정부에, 하나님의 공의를 세우는 일은 교회가 책임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츠빙글리는 당시 경제현실 가운데 이자율과 관련해서 인간은 모든 재물의 청지기일 뿐이므로 이자를 받지 말아야 하지만 현실적 대안으로 5%의 이자를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즉 츠빙글리의 종교개혁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유일한 권위로 삼아 그 말씀을 강단에서 선포하고 그에 따라 교회개혁과 사회변혁을 이루어야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츠빙글리의 신학사상을 아르투어 리히가 20세기 들어 재발견하였고 이를 기초로 하나님의 공의와 인간의 정의가 현실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경제 윤리를 모색하였습니다. 츠빙글리의 사회윤리에 기초한 아르투어 리히의 경제질서구상 1989년 유럽의 동구권이 몰락하여 시장경제질서에 종속되자 냉전질서는 종식되어 미국 주도의 신자유주의가 도래했고 정치.이데올로기는 경제중심시대로 이관되었습니다. 츠빙글리의 종교개혁 유산을 다시 발견한 리히는 시장경제질서만이 존속하는 시점에서 어떻게 정의로운 경제질서를 세울 것인가에 관심을 두어 츠빙글리 사상에 기초한 실천 가능한 경제윤리를 모색하고 추구했습니다. 당시 동구권은 서구와 같은 수준에 이르고자 하는 경제욕구가 상승하며 약육강식의 자본주의시장이 확대되었고, 서유럽은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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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d 09/13/15
교회 역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눈 ‘맛있는 교회사 이야기’ 마지막 순서는 교회사를 바라보는 시각에 관한 것입니다. 지금은 세계화 시대입니다. 여기에는 기독교의 세계화도 포함됩니다. 이 때 한국교회가 세계교회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한국교회는 자체 한국교회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해 답해야만 합니다. ‘동양’이라는 단어는 서양인들이 만들어 규정하고 설명한 것 즉 우리 밖의 사람이 규정한 것이며 우리는 그 틀 안에서 우리 스스로를 인식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거기 머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우리의 정체성을...
Published 09/13/15
취리히 개혁교회의 시작 스위스 취리히의 개혁은 교회의 개혁과 함께 사회변혁이 추진된 것이 중요한 특징입니다. 먼저 취리히 교회 개혁은 예배개혁으로 시작되었는데 중세교회의 미사를 말씀 중심의 예배로 바꾸고 예배 언어도 라틴어에서 토착어인 독일어로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그로스뮌스터 교회가 이끌어 온 라틴어학교를 정비해 선지학교를 세우고 이를 통해 성경 주석 작업과 함께 성경번역을 시작하여 1529년 신구약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해 출판했습니다. 이때의 성경주석이 오늘까지 큰 가치를 가지고 전래되는 칼빈주석의 원조가...
Published 08/3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