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18]세계 교회 에큐메니칼 운동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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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교회 에큐메니칼 운동의 역사는 17세기로부터 시작되어 19세기에 이르러 활짝 꽃을 피웁니다. 그 후 20세기 까지 지속되다가 2차 세계대전으로 에큐메니칼 운동은 단절되었고 이후 WCC를 통해 재건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1. 선교로부터 비롯된 세계 에큐메니칼 운동 17세기까지 개신교는 유럽중심의 종교였으나 항해술의 발달과 영국의 종교탄압으로 그 중심이 신대륙으로 이전하게 됩니다. 이 때 유럽에서는 항로개발과 함께 인도를 비롯하여 세계선교를 시작하였고 18세기 선교기관이 설립되었으며 세계선교지원을 위한 신앙단체가 생겨났습니다. 이때 발생한 세계선교에 대한 열정은 신대륙으로 옮아갔고 이후 19세기 말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권 선교의 기틀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세계교회 에큐메니칼 운동의 역사는 선교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아도 좋을 것입니다. 2. 연합으로 비롯된 에큐메니칼 운동 세계를 향한 뱃길이 열리면서 1846년 런던에서는 개신교연맹이 결성되고 그리스도교 일치를 위한 기도회가 열렸으며 이를 바탕으로 세계 성공회와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등이 연맹하여 국제적 연합기구를 구성했습니다. 이는 세계 교회 에큐메니칼 운동의 출발점이기도 했습니다. 3. 교육으로 비롯된 에큐메니칼 운동 에큐메니칼 운동은 1889년 세계주일학교연맹 결성, 1855년 YMCA와 1894년 YWCA 창립, 1886년 세계대학생선교연맹의 창설로 더욱 구체화되었습니다. 4. 사회운동으로 표출된 에큐메니칼 운동 이는 1843년 영국 윌버포스에 의한 반노예운동단체 결성과 1964년 세계적십자회 조직, 1870년대 독일에서 시작된 도시빈민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봉사활동 등이 대표적이었습니다. 즉 18세기 말부터 19세기에 걸쳐 꽃피운 에큐메니칼 운동은 선교, 교단연합, 교육과 청년운동, 사회참여와 변혁운동을 주제로 하여 포괄적 신앙운동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한편 19세기말부터 20세기에 걸친 에큐메니칼 운동은 세 차례의 국제 모임 끝에 1910년 대회에서 ICM즉 국제선교협의회를 탄생시켰으며 이 대회는 세계교회 에큐메니칼 운동의 시발점으로 여겨지고 습니다. 그리고 20세기 들어서 세계교회는 평화운동을 전개하여 실천적 기독교 즉 평화를 위하나 교회의 실천을 강조하며 교회의 하나 됨을 추구했습니다. 그 결과로 국제기구인 ‘삶과 봉사’가 구성되었습니다. 5. 신학으로서의 에큐메니칼 운동 1927년 로잔에서는 국제기구인 신앙과 직제를 구성했습니다. 에큐메니칼 운동의 신학적 역사는 3세기로부터 시작됩니다. 지중해를 중심으로 한 방대한 지역에서 하나의 신앙고백을 추구하며 영지주의로부터 교회를 지키기 위해 사도신경을 확립하였고 이어서 신약성경의 정경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니케아와 콘스탄티노플 신조로 확립되어 오늘날 우리에게 신앙유산으로 전수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이어지던 에큐메니칼 운동은 2차 대전 이후 단절되었다가 1948년 WCC 창설로 재건되었습니다. 에큐메니칼의 어원은 신약성경에 기록된 단어 오이쿠메네에서 비롯되었는데 이는 경제와 생태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즉 교회내적으로는 세계교회들의 교제와 나눔, 연합을 일컬으며, 어원적으로는 세계의 다양한 현실들 즉 하나님의 창조세계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드러내기 위하여 하나님의 뜻이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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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d 09/13/15
교회 역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눈 ‘맛있는 교회사 이야기’ 마지막 순서는 교회사를 바라보는 시각에 관한 것입니다. 지금은 세계화 시대입니다. 여기에는 기독교의 세계화도 포함됩니다. 이 때 한국교회가 세계교회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한국교회는 자체 한국교회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해 답해야만 합니다. ‘동양’이라는 단어는 서양인들이 만들어 규정하고 설명한 것 즉 우리 밖의 사람이 규정한 것이며 우리는 그 틀 안에서 우리 스스로를 인식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거기 머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우리의 정체성을...
Published 09/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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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d 09/0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