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8] 한국 개신교 130년 - WCC를 둘러싼 논쟁에 대한 역사적 고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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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CC를 둘러싸고 한국교회 안에서 60년째 이어지고 있는 논쟁과 오해에 대해 알아보고 있는데 이번 주는 세 번째 항목부터 살펴봅니다. 3. WCC의 선교유예론 이 논쟁은 WCC도 과연 선교를 하는가? 라는 질문에 답을 함으로써 해소될 수 있는데, 19세기 유럽과 북미의 교회들은 아프리카 등지에서 선교에 나서면서 서로 협력하였고 이 선교를 보다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1910년 세계선교대회를 열고 1921년 국제선교협의회를 창설하였으며 1948년에 이르러 WCC를 창설하였습니다. 즉 WCC는 선교를 위해 선교현장에서 출발한 단체이므로 이런 논쟁에 이른 의혹은 불식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의혹의 출발은 1960년대에 본격화된 제국주의선교에 대한 논란과 이에 따라 1971년부터 지속된 선교유예 논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선교유예는 결의에 이르지 못했고 대안으로 동반자 관계로의 발전을 도모하게 되었습니다. 즉 식민정책에 수반된 제국주의 선교정책을 반성하고 토착문화를 고려하여 선교를 모색함으로써 선교하는 자와 대상자가 동반자 관계를 구축하게 하려는 시도였습니다. 4. WCC에는 사회구원만 있다는 의혹 WCC안에는 진보와 보수가 함께 존재하며 수평적 사회구원과 수직적 영혼구원은 늘 균형을 이루게 됩니다. WCC는 냉전시대에 하나님이 뜻대로 화해를 추구하기 위하여 힘썼으나 1968년 4차 총회에는 새로운 이슈들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즉 서구의 학생운동과 미국의 케네디, 마틴 루터 킹 목사 암살, 월남전 지속, 남미군사독재정권의 등장, 남아공의 인종차별 상황 등에 따라 사회구원이 강조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1973년 방콕선교대회에서는 개인구원과 사회참여가 조화를 이루었고 복음주의자들도 사회참여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면서 점차 양 진영이 접촉점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양 진영 모두 영혼구원과 사회참여를 통전적인 관점으로 보는 수렴이 일어나고 있어 두 진영 모두를 한쪽에 치우친다고 비난할 수 없습니다. 5. WCC의 게릴라 지원설 WCC는 사회 불의와 부정을 선교의 과제로 이해하고 사회참여 적극적이었습니다. 대표적으로 1969년 ‘인종차별정책 반대 프로그램’을 설립하였고 그 활동 중 하나로 남아공의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교회를 지원하였습니다. 이에 리더스 다이제스트가 WCC의 게릴라 지원설을 기사로 수차례 게재하였으며 그 기사의 자료는 남아공백인정권으로 나온 것이었습니다. 한국 내에서 WCC가 용공행위를 했다고 주장하는 논거들은 주로 이 기사에 근거한 것입니다. 남아공백인정부는 ICCC 활동을 재정적으로 지원하여 WCC를 비난하도록 하였고 남아공의 인종차별정책을 옹호하도록 했습니다. 1994년 만델라가 집권하자 ICCC에 대한 남아공의 지원은 중단되었습니다. 6. WCC의 종교다원주의 논쟁 우리가 사는 사회는 다원화사회이지만 우리 신앙은 결코 다원화될 수 없습니다. WCC에 대한 종교다원주의 논쟁은 1961년 인도총회 이후 전개된 ‘종교간의 대화프로그램’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는 아시아 아프리카에서 종교간 갈등과 정죄가 사회를 폭력과 분열로 몰아넣는 것을 보면서 마련한 것입니다. 그러나 4차 총회는 그리스도의 유일성과 대화와 선포 사이의 차이를 분명히 하였고 5차 총회에서는 차이를 이해하고 인정해야 하나 혼합주의 위험에 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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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d 09/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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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d 09/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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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d 09/0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