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2] 한국 개신교 130년 - 교회의 평화통일 운동과 북한 선교
Listen now
Description
80년대 한국교회 양적성장의 시대에 모든 교회와 교인들이 물량적 성장에 몰입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소수의 신앙인들은 1980년대부터 민족통일에 대해 각성하고 사회민주화와 한반도 화해와 평화통일운동을 시작했습니다. 한국교회의 통일논의는 NCCK에 의해서 시작되었습니다. 1980년 한창 부풀어 오르던 민주화의 꿈이 군부 독재정권의 재등장으로 무산되어 암울했던 시기에 독일개신교연합회와 NCCK는 에큐메니칼협의회를 개최해 한반도 통일에 관한 논의를 했습니다. 그 후 1984년 10월 WCC동북아정의평화협의회를 통해 한국교회에 통일의 생기를 불어넣었고 1986년 스위스 글리온에서 제1차 남북기독자회의를 통해 처음으로 남북교회 당사자가 자리를 마주하는 역사적 일을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988년 2월에는 NCCK가 37차 총회를 통해 ‘민족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선언’ 즉 88선언을 하기에 이릅니다. 이 선언은 죄책고백으로 시작하여 5개의 통일원칙과 정부에 대한 제안 등을 담고 있는데 이 선언의 역사적 의의에 비해 볼 때 반응은 대체로 냉랭했습니다. 또한 교회 내에서 잠자던 통일논의에 다시 불을 붙였다는 의미에도 불구하고 NCC노선에 대한 우려가 증대되어 보수교단을 중심으로 새로운 단체 즉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인 한기총이 결성되었습니다. 이렇게 결성된 한기총은 통일에 대한 직적 언급보다는 북한교회재건을 위한 활동에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장차 재건될 북한교회에 대한 세 가지 원칙을 발표하고 이를 실행하기 위한 조직체도 구성하였으며 과거 북한지역 교회에 대한 사료를 발굴하는 등의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이후 94년 김일성 사망하고 95년 북한지역 대홍수에 따른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어 북한체제가 흔들린다고 판단되자 한기총은 북한선교에 불을 붙여 북한구호활동과 식량난 타개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쳐나갔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북한 정권이 유지되고 북한교회재건이 난항에 부딪히자 한기총의 북한교회재건은 탈북자선교와 북한지하교회 돕기 사업 그리고 장차 북한교회재건에 참여할 사역자 양성으로 전환되었습니다. 이는 눈에 보이는 교회의 재건에서 보이지 않는 교회 즉 사람을 돕는 사업을 통해 교회를 재건하는 방향으로 전환된 것입니다. 이런 북한선교활동은 예장 통합 평양노회를 통해서도 진행되었습니다.
More Episodes
Published 09/13/15
교회 역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눈 ‘맛있는 교회사 이야기’ 마지막 순서는 교회사를 바라보는 시각에 관한 것입니다. 지금은 세계화 시대입니다. 여기에는 기독교의 세계화도 포함됩니다. 이 때 한국교회가 세계교회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한국교회는 자체 한국교회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해 답해야만 합니다. ‘동양’이라는 단어는 서양인들이 만들어 규정하고 설명한 것 즉 우리 밖의 사람이 규정한 것이며 우리는 그 틀 안에서 우리 스스로를 인식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거기 머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우리의 정체성을...
Published 09/13/15
츠빙글리의 신학사상 츠빙글리는 한 마디로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종교개혁과 사회변혁을 이루려고 힘썼던 개혁가였습니다. 스위스연방체가 양분되며 카펠전쟁을 치르다가 전사하였지만 그의 신학사상은 오늘날 교회 안에서는 장로교로 대표되는 개혁교회를 이루었고 사회적으로는 아르투어 리히를 통해 경제윤리로 구현되었습니다. 츠빙글리의 경제 윤리 아투어 리히는 취리히 대학에 봉직한 기독교경제윤리학자로 1930년대 ‘땅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회변혁이 필수’라고 주장한 레온하르트 라가르목사의 강연회에 참석한 것이...
Published 09/0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