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1960년대 우리 사회는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도시 특히 서울을 중심으로 한 물량적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이 때 ‘우리도 한 번 잘 살아보자’는 표어에 나타난 대로 물질적 번영 추구 의식은 성장이데올로기로 자리 잡았고 이것은 교회에도 그대로 적용되었습니다. 사회의 경제성장은 교회의 경제 사정 호전으로 이어지고 이는 교회의 힘으로 축적되었으며 특히 70년대 서울 강남개발과 이에 따른 교회의 급성장은 오늘날 대형교회의 기틀이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물질적 성장 이데올로기는 교회 안에 깊이 스며들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축복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 물질적 축복에 몰입하는 기복신앙이 만연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축복에 따른 책임 즉 축복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에는 무관심할 뿐 아니라 자기중심적이며 이기적인 신앙을 통해 한국교회 교인의 신앙이 사적인 영역에 갇히는 잘못을 범하게 되었습니다. 즉 물질의 축복을 교회의 본질인 공적책임을 수행하는데 사용하지 않고 내 교회 성장을 위한 방편으로 오용해온 것입니다.
1960년부터 약 30여 년간 교인수 6배의 유래 없는 성장을 이룩한 한국교회는 시찰회나 노회를 통한 연합활동이 일부 대형교회에 의해 좌우되는 결과를 낳았고 한편으로는 농어촌 교회의 약화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새로운 교회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는데 80년대 10여 년간 지속된 작은 교회, 민중교회운동과 70년대 초반 시작된 도시산업선교가 그것입니다.
도시산업선교의 출발은 1958년 산업전도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기독교신앙 안에서 노동의 가치를 전달하고 노동윤리를 가르침으로 좋은 반응을 얻었던 산업전도는 60년대 산업화시대에 들어서면서 산업환경 변화에 따라 노동권익추구와 노동운동으로 이어졌습니다. 또한 전도의 정신과 방식도 바뀌었는데 교회가 주체된 방식에서 교회를 통해 하나님께서 선교하시는 방식 즉 복음전도와 사회정의가 함께 추구되는 방식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자 교회 안에서 치열한 찬반 논쟁이 일어났고 정부는 탄압을 시작하여 도시산업선교를 불순세력으로 규정하였으며 이 운동이 점차 정치화되자 마침내 용공세력으로 규정하여 충돌이 격화되기에 이르렀습니다. 마침내 도시산업선교는 부담을 느낀 총회에 의해 산업전도회로 회귀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정리하면 한국교회 물량적 성장의 시대에 많은 교회가 교회의 본질인 공적책임을 잊고 개교회 성장에 몰입하는 잘못을 저질렀으나 소수의 교회와 교우들은 사회적 약자와 소외된 자들을 위해 일해 왔습니다. 여전히 성장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있는 작금의 한국교회를 보면서 지난날의 과오를 반성하고 한국교회의 전통이자 본질인 사회를 향한 공적책임을 다하는데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새로운 결단을 해야만 할 것입니다.
교회 역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눈
‘맛있는 교회사 이야기’ 마지막 순서는 교회사를 바라보는 시각에 관한 것입니다. 지금은 세계화 시대입니다. 여기에는 기독교의 세계화도 포함됩니다. 이 때 한국교회가 세계교회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한국교회는 자체 한국교회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해 답해야만 합니다. ‘동양’이라는 단어는 서양인들이 만들어 규정하고 설명한 것 즉 우리 밖의 사람이 규정한 것이며 우리는 그 틀 안에서 우리 스스로를 인식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거기 머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우리의 정체성을...
Published 09/13/15
츠빙글리의 신학사상
츠빙글리는 한 마디로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종교개혁과 사회변혁을 이루려고 힘썼던 개혁가였습니다. 스위스연방체가 양분되며 카펠전쟁을 치르다가 전사하였지만 그의 신학사상은 오늘날 교회 안에서는 장로교로 대표되는 개혁교회를 이루었고 사회적으로는 아르투어 리히를 통해 경제윤리로 구현되었습니다.
츠빙글리의 경제 윤리
아투어 리히는 취리히 대학에 봉직한 기독교경제윤리학자로 1930년대 ‘땅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회변혁이 필수’라고 주장한 레온하르트 라가르목사의 강연회에 참석한 것이...
Published 09/0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