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이천년 교회 역사 속에서 한국교회는 1960년대부터 놀라운 성장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이후 삼십여 년 간 지속된 성장은 최단 기간 동안에 이룩한 매우 놀라운 것으로 일찍이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 때 한국교회 성장의 가장 큰 배경은 사회의 산업화입니다. 즉 1960년대 산업화의 물결과 함께 도시가 확장됨에 따라 한국교회는 이를 기반으로 물량적 성장 즉 교인수와 재정의 성장을 이룩합니다. 반면 농어촌 인구와 함께 농어촌 교인이 대도시로 이주하여 도시교인으로 변모하면서 농어촌 교회는 쇠퇴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당시 한국교회가 이렇게 성장 일변도가 치닫게 되면서 한국교회는 성장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히게 되었으며 특별히 물량적 성장 이데올로기는 인구가 감소하는 등 이전과 구별된 현실 속에서도 한국교회 전반에 퍼져있는 상태입니다. 당시 삼십 여 년간 서울의 인구는 네 배 증가였고 그 기간 한국교회의 수는 일곱 배나 늘었습니다. 이는 50년대 북한교인이 월남하여 북한교회를 남한에서 재건함으로 이룩했던 성장과도 비교되는 것으로 50년대 성장은 전국적인 현상이었으나 산업화에 따른 교회성장은 대도시 중심 특히 서울을 중심으로 한 편중된 성장이었습니다.
교회성장기 초반 민족적 고난을 극복한 교우들의 살아 운동력 있고 헌신적인 신앙이 성장의 밑거름이 되었으나 점차 국가 사회의 경제성장 구호가 교회에 그대로 유입되면서 성장이데올로기가 교회 전반을 지배하게 되었는데 이것을 한국교회의 양적 성장의 배경의 하나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인구도시집중으로 생활양식과 환경이 서구식으로 바뀌면서 서양종교인 기독교가 친근한 이미지로 다가서게 된 것도 한 원인으로 꼽을 수 있고 농어촌을 떠나 도시로 이주한 사람들이 겪는 아노미현상을 교회에서 해결할 수 있게 된 것 또한 성장의 주요 요인이 되었습니다.
산업화 시대 도시 중심의 교회 성장과 부흥은 주로 대중집회와 전도 대회를 통해 일어낫습니다. 1965년 민족복음화운동을 시발로 1973년 빌리 그래함 전도 대회와 전군 신자화 운동 그리고 1974년의 엑스플로 ‘74 전도대회, ’77 민족 복음화 성회, ‘80세계 복음화 대성회, 1984년 한국교회100주년기념사업, ‘88세계복음화대성회를 통해 한국교회는 양적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이러한 대중 집회와 전도 대회는 여러 개신교단들이 연합과 일치를 추구하는 에큐메니칼 정신으로 진행했다는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교회 역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눈
‘맛있는 교회사 이야기’ 마지막 순서는 교회사를 바라보는 시각에 관한 것입니다. 지금은 세계화 시대입니다. 여기에는 기독교의 세계화도 포함됩니다. 이 때 한국교회가 세계교회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한국교회는 자체 한국교회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해 답해야만 합니다. ‘동양’이라는 단어는 서양인들이 만들어 규정하고 설명한 것 즉 우리 밖의 사람이 규정한 것이며 우리는 그 틀 안에서 우리 스스로를 인식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거기 머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우리의 정체성을...
Published 09/13/15
츠빙글리의 신학사상
츠빙글리는 한 마디로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종교개혁과 사회변혁을 이루려고 힘썼던 개혁가였습니다. 스위스연방체가 양분되며 카펠전쟁을 치르다가 전사하였지만 그의 신학사상은 오늘날 교회 안에서는 장로교로 대표되는 개혁교회를 이루었고 사회적으로는 아르투어 리히를 통해 경제윤리로 구현되었습니다.
츠빙글리의 경제 윤리
아투어 리히는 취리히 대학에 봉직한 기독교경제윤리학자로 1930년대 ‘땅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회변혁이 필수’라고 주장한 레온하르트 라가르목사의 강연회에 참석한 것이...
Published 09/0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