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낭독] 브로델 2부 :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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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뜨면 집을 나서고 해지면 돌아와 쉬는 습관. 1000년 전에도 지금도 하고 있는 것. 이 역사는 어디서부터 시작했을까? 육중하게 반복되는 시간, 이 끈질긴 대지의 역사. 우리는 기나긴 시간 속에서 무엇을 창조해 내고 있을까? 안녕하세요. 두철수 애청자 여러분~ 이번주는 즐거운 설날과 함께네요. 방송과 함께 모두 유쾌한 설날 보내시길 바랍니다. 오늘 낭독할 책은 브로델이 쓴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입니다. 브로델의 유명한 저서 《물질문명과 자본주의》가 아니라, 그 책이 나오기 전에 강연했던 것을 정리해 쓴 원고를 책으로 만든 건데요. 엄청~ 두꺼운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의 축소판 같은 책이죠. 브로델은 왜 ‘물질문명’과 ‘자본주의’를 엮었을까? 그가 궁금하던 것은 무엇일까? 오늘 함께 읽는 책은 그렇게 난이도가 수월한 책이니 만큼 가는 길에 심심치 않은 군것질이 되어주길 자랍니다. 그럼 이제 저와 함께 도착지까지 오래 기다려야 하는 차안에서 브로델이 궁금했던 것이 무엇인지 파악해보죠. 낭독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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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내가 그렇듯 삶을 사랑했고, 인생을 사랑했으며, 죽음에 대해서도 나와 같은 저항감을 느꼈다.” 오늘 낭독할 책은 어머니의 죽음을 바라본 보부아르의 《죽음의 춤》입니다. 국내에는 《아주 편안한 죽음》,《편안한 죽음》 등 여러 출판사에 다른 이름으로 번역된 책입니다. 제가 고른 건 한빛문화사에서 나왔고 성유보 님이 옮기신 책입니다. 오늘 낭독할 부분은 신 앞에서의 침묵, 산자와 죽은 자, 영원한 이별, 실존, 혹은 공허입니다. 방송에서도 메뚝씨가 여러 번 언급했던 책이기도 하고, 3부...
Published 03/06/20
Published 03/06/20
“인간은 무한할 수 없습니다.” 보부아르와 함께한 한 달간의 여정을 마무리하는 심화편 시간입니다. 메뚝씨가 정의한 보부아르는 ‘전망의 나르시시스트’입니다. 나르시시스트라고 하면 ‘과도한 자기애’라고 표현됩니다만, 지독한 자기애는 허위적인 관점을 빗겨낼 전망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주관의 심화는 객관으로의 통로라고 표현해도 좋겠네요. 개인에게 전망이 없다는 것은 존재의 제 1명제인 ‘인간은 유한하다’라는 사실은 망각할 때입니다. 존재의 전제를 잊지 않고 자기를 사랑하는 지독한...
Published 03/0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