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철수 193회 페르낭 브로델 3부 두 얼굴의 히드라! : 아날학파 계보와 자본주의 역사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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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제의 극복은 반드시 새로운 인간입니다.” 3주간의 여정 마지막 시간입니다. 오늘은 페르낭 브로델과 함께 아날학파의 계보와 자본주의의 역사를 톺아봅니다. 아날학파의 역사 의식은 정치 대신 사회를, 개인 대신 집단을, 연대 대신 구조를 탐색하려고 했던 새로운 역사 운동이라 볼 수 있습니다. 아날학파는 총 3세대를 거쳐 진행된 민중을 위한 새로운 세계관이자, 브로델을 정점으로 전세계의 역사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혁신이었다고 말할 수 있죠. 그렇다면, 메뚝씨는 어떤 의미로 페르낭 브로델을 ‘두 얼굴의 히드라’라고 정의했을까요? 이번 방송을 통해서 그의 민낯을 보고, 자본주의에 사는 우리가 놓친 것이 역사의 결에 대해 사유하며 달려봅니다. 함께하는 노래 Princess Mononoke - Ashitaka and S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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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내가 그렇듯 삶을 사랑했고, 인생을 사랑했으며, 죽음에 대해서도 나와 같은 저항감을 느꼈다.” 오늘 낭독할 책은 어머니의 죽음을 바라본 보부아르의 《죽음의 춤》입니다. 국내에는 《아주 편안한 죽음》,《편안한 죽음》 등 여러 출판사에 다른 이름으로 번역된 책입니다. 제가 고른 건 한빛문화사에서 나왔고 성유보 님이 옮기신 책입니다. 오늘 낭독할 부분은 신 앞에서의 침묵, 산자와 죽은 자, 영원한 이별, 실존, 혹은 공허입니다. 방송에서도 메뚝씨가 여러 번 언급했던 책이기도 하고, 3부...
Published 03/06/20
Published 03/06/20
“인간은 무한할 수 없습니다.” 보부아르와 함께한 한 달간의 여정을 마무리하는 심화편 시간입니다. 메뚝씨가 정의한 보부아르는 ‘전망의 나르시시스트’입니다. 나르시시스트라고 하면 ‘과도한 자기애’라고 표현됩니다만, 지독한 자기애는 허위적인 관점을 빗겨낼 전망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주관의 심화는 객관으로의 통로라고 표현해도 좋겠네요. 개인에게 전망이 없다는 것은 존재의 제 1명제인 ‘인간은 유한하다’라는 사실은 망각할 때입니다. 존재의 전제를 잊지 않고 자기를 사랑하는 지독한...
Published 03/03/20